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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 왕조(페르시아어: ساسانیان)는 아르다시르 1세가 세운 고대 이란 왕조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한 왕조라는 뜻으로 사산조 페르시아(사산 왕조 페르시아) 또는 사산조(사산 왕조)로 불리기도 하였다.


역사Edit

226년 서부 이란 지역에서 통치기반을 굳힌 파르티아의 지방영주 아르다시르 1세는 동부지역으로 진출하여 여러 부족들을 차례로 정복했다. 그는 자신을 '이란족의 왕 중 왕'이라 칭하고, 티그리스 강변의 고대도시 셀레우키아를 '아르다시르의 착한 행위'라는 이름으로 재건하여 크테시폰과 함께 그의 위세를 떨쳤다.

그의 아들 샤푸르 1세는 영역을 더욱 넓혔다. 여러번 로마군과 싸워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238년 ~ 244년)는 전사시켰고, 황제 발레리아누스(253년 ~ 260년)를 포로로 잡을 정도로 샤푸르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래서 그는 '이란족과 비(非)이란족의 왕 중 왕'이란 칭호를 사용했으며, 이 칭호는 사산 왕조 말기까지 지속되었다. 사산 왕조의 영역은 파르티아 때보다 훨씬 광대했는데, 이것은 그 행정력이 효율적이었고 군사력이 막강했음을 뜻한다. 중앙 아시아 쪽의 동북부 국경지역에서 아르다시르 1세샤푸르 1세쿠샨 왕조의 서부지역을 정복했다. 이후 사산 왕조의 외교정책은 변방의 방어와 영토확장에 목적을 두고 추진되었다.

사산 왕조는 파르티아 왕조의 세습적인 자치왕국을 폐지하고, 대신 왕족 가운데서 총독을 임명 또는 해임했다. 따라서 왕위계승자는 보통 가장 큰 주의 총독직을 맡게 되었으며, 그 결과 중앙집권이 매우 강화되었다. 더구나 황제 개인에게보다 왕실에 대한 충성심이 강조되어서 왕실의 집단지도제와 유사하게 되었다. 사산 왕조시대 로마와의 분쟁이 가장 첨예했던 곳은 아르메니아 인페리오르였다. 바흐람 2세의 사후(293년) 왕위 계승 문제로 내분이 일어나 아르메니아는 296년에 로마의 수중에 떨어졌다. 아르메니아와 로마에서 기독교화가 진행되자 이것은 이란과 로마-비잔티움 사이의 종교적 분쟁으로 확대되었다.

샤푸르 2세의 아르메니아 실지회복(失地回復)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으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2세 사후(361), 티그리스 강변과 아르메니아 대부분의 영토는 페르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약 20년간의 혼란기(아르다시르 2세, 샤푸르 3세, 바흐람 4세)가 지난 후 야즈데게르드 1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기독교에 관대한 정책을 폈는데 이것으로 인해 귀족들의 원성을 샀으며, 이때문에 그의 사후(420) 아들 바흐람 4세의 계승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동부에 에프탈의 침입 때문에 동로마 제국과 100년간의 평화조약을 맺고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허용했다. 카바드 1세(488~531)는 정통 조로아스터교를 재정립했으며, 과세제도의 신설과 토지세의 개혁 등을 이룬 명망 있는 통치자가 되었다. 또한 군대를 강화하여 그의 세력은 흑해까지 다다랐다.

투르크족은 560년경 이란 동부지역에서 출현하여 중근동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으나 아직 사산 왕조의 영역에 심각한 위협은 되지 않았다. 호스로 1세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호르미즈드 4세(재위: 579년 ~ 590년)는 비잔티움과 평화협상에 실패했지만, 기독교에 관대한 정책을 폈다. 이러한 정책은 그의 아들 호스로 2세에까지 이어져 결국 조로아스터교도들의 반란을 야기시켰다. 호스로 2세는 비잔티움으로 도피했으며,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마우리키우스(582년 ~ 602년)의 도움으로 591년 크테시폰에서 다시 왕위에 올라 그의 통치기간 안에 번영을 누렸다.

마우리스 황제가 암살되자(602년) 비잔티움과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호스로 2세의 군대는 안티오크(611년)·다마스쿠스(613년)·예루살렘(614년)·이집트(619년) 등을 차례로 정복했다. 610년 왕위에 오른 비잔티움의 헤라클리우스는 보복공격을 시작하여 627년에는 티그리스 강 유역까지 진출했다. 이후 호스로 2세는 자신의 아들 카바드 2세에게 살해되었고(628년), 카바드의 사후 그의 손자인 야즈데게르드 3세가 왕위에 올랐다(633년).

동로마 제국과의 장기간에 걸친 전쟁으로 인해 사산 왕조의 세력은 쇠퇴했고, 이슬람화된 신흥 아랍족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페르시아군은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있었던 네하벤드 전투에서 크게 패하였고, 야즈데게르드 3세도 651년에 메르브 근처에서 암살되었다. 이로써 이슬람 이전의 이란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제국의 몰락과 함께 조로아스터교도 점차 쇠퇴일로를 걸었으나, 그 당시 이슬람교도들은 조로아스터교에 관용을 베풀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에서 점차 사라졌으며, 현재 야즈드봄베이 등지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문화Edit

종교Edit

조로아스터교의 절대신 아후라 마즈다와 이란의 전통적인 신들의 결합이 파르티아 시대에 이루어졌는데 사산 왕조 때는 불과 빛의 숭배의식과 아후라 마즈다에 대한 경배의식이 강조되었다. 조로아스터교는 사산 왕조시대에 체계적인 종교로 발전했다. 최고사제는 종교관할권뿐만 아니라 후대에 왕위계승자의 선정과 국사(國事)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선과 악, 즉 아후라 마즈다와 아리만의 대결에서 선한 신령과 천사는 모두 전지전능한 아후라 마즈다의 지휘를 받았다. 여기에 사산 왕조의 근거지인 파르스 지역의 관행도 종교의례 속에 상당히 스며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태양신 미트라조로아스터교와 결합된 것이다.

샤푸르 1세 치하에서 마니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나타났다. 창시자 마니(216년? ~ 274년?)는 바빌로니아에 살던 파르티아 왕족의 후손이었지만 이란어를 사용했고 그의 교리는 그노시스교의 사상과 철학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또한 마니는 조로아스터교와 기독교의 사상을 함께 결합하려 애썼다. 이러한 마니의 가르침은 샤푸르 1세의 지원을 받아 이란과 외부지역까지 널리 전파되었으나 그의 아들 바흐람 1세의 탄압정책으로 마니는 처형되었고 신자들은 박해를 받았다. 그 후 마니교는 호라산 지역과 사산 왕조의 동부 및 중앙 아시아에서 명맥을 유지했다.

신학도 발전되어 아후라 마즈다, 즉 오르미즈드와 아리만을 무한한 시간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여 종래의 이원적(二元的) 개념을 수정하려는 주르반 종파가 나타났으나, 호스로 1세(재위: 531년 ~ 579년)가 이를 이단으로 선언함으로써 사산 왕조의 조로아스터교는 의례와 순수한 교리를 정교하게 다듬어갔다.

기독교는 3세기 중반 이후 티그리스강유프라테스강변의 아람어 사용공동체에 전파되었다. 로마 제국에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에는 사산 왕조는 기독교를 관용했으나, 마니교나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적대적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로마가 점차 기독교화된 339년 이후 기독교인들은 샤푸르 2세와 그의 후계자들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기독교는 사산 왕조가 멸망한 후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건축Edit

사산 왕조 예술의 가장 뛰어난 작품은 석회석 절벽위에 새겨진 거대한 부조물이다. 페르세폴리스 근처에 있는 나크시에 로스탐과 나크시에 라자브 등이 현존하는 유적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부조물들의 모습을 통해 사산 왕조 통치자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현존하는 건축물로는 호스로 2세(591년 ~ 628년)가 크테시폰에 세운 거대한 궁전이다. 일부가 남아 있는 이 궁전은 구운 벽돌로 돔 형식의 천장을 반드는 사산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문학Edit

사산 왕조시대에는 문학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 왕조가 문학보다 종교 우선정책을 추진한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외국종교의 영향과 더불어 외국문학도 들어와 중세 팔라비어로 번역되었다.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번역작품은 호스로 1세 때 완성된 〈칼릴라와 딤네 Kalilag and Dimnag〉인데 인도의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외에도 헬레니즘의 낭만주의 문학도 소개되었다.


사산 제국 연표Edit

226–241: 아르다시르 1세의 치세:

241–271: 샤푸르 1세의 치세:

271–301: 왕조의 내전 기간.

309–379: 샤푸르 2세 의 치세:

  • 337–350: 로마와의 1차전쟁 : 별 성과없음.
  • 358–363: 로마와의 2차전쟁. 대승을 거두고 동방과 서방의 국경을 확장하다.

399–420: 야즈데게르드 1세의 치세:

  • 409: 기독교도, 공개적 예배와 교회 건설 허락되다.
  • 416–420: 야즈데게르드 초기의 명령을 뒤엎고 기독교 박해하다.

420–438: 바흐람 5세의 치세:

  • 420–422: 로마와 전쟁.
  • 424: 다드이수 종교회의, 동방정교회 콘스탄티노폴리스교회로부터 독립을 선언

438–457: 야즈데게르드 2세:

483: 기독교 관용 포고령 발표.

491: 아르메니아 교회, 칼케돈 신조를 부정하다.:

531–579: 전륜성황, 호스로 1세의 치세:

  • 532: 비잔티움 제국과 "영구 평화조약" 체결
  • 540–562: 비잔티움 제국과 전쟁.

590–628: 호스로 2세의 치세:

628–632: 황제의 난립으로 인한 혼란기

632–642: 야즈데게르드 3세의 치세.:

  • 636: 이슬람의 정복기간에 사산조 군대가 알카디시야 전투에서 아랍 무슬림군에게 대패하다.
  • 642: 최종적으로 아랍군이 니네베에서 승리하다.

651: 마지막 황제 야즈데게르드 3세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살해당하고 제국이 막을 내리다. 그의 아들과 다른 많은 유민들은 중국으로 망명하다.


사산 왕조의 황제 목록Edit

사산 왕조 가계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1][2]사산 왕조의 가계도
사산왕조의 지배자
지배자 연도
아르다시르 1세 224년 - 241년
샤푸르 1세 241년 - 272년
호르미즈드 1세 272년 - 273년
바흐람 1세 273년 - 276년
바흐람 2세 276년 - 293년
바흐람 3세 293년
나르세스 1세 293년 - 302년
호르미즈드 2세 302년 - 310년
샤푸르 2세 310년 - 379년
아르다시르 2세 379년 - 383년
샤푸르 3세 383년 - 388년
바흐람 4세 388년 - 399년
야즈데게르드 1세 399년 - 420년
바흐람 5세 420년 - 438년
야즈데게르드 2세 438년 - 457년
호르미즈드 3세 457년 - 459년
페로즈 1세 457년 - 484년
발라시 484년 - 488년
카바드 1세 488년 - 531년
쟈마습 496년 - 498년
호스로 1세 531년 - 579년
호르미즈드 4세 579년 - 590년
바흐람 코빈 590년 - 591년
비스탐 591년 - 595년
호스로 2세 591년 - 628년
카바드 2세 628년
아르다시르 3세 628년 - 630년
샤흐르바라즈 630년
푸란도흐트 (여제) 630년 - 631년
페로즈 2세 631년
아자르미도흐트 (여제) 631년
호르미즈드 6세 631년 - 632년
야즈데게르드 3세 632년 - 6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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