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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of England

잉글랜드 왕국(영어: Kingdom of England})은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남쪽을 차지했던 옛 나라로 지금의 웨일스잉글랜드를 영토로 했다. 왕국의 수도는 1066년 노르만 정복 이전까지는 햄프셔 주윈체스터였다. 윌리엄 1세가 수도를 런던으로 옮겼다. 이후 런던은 잉글랜드 왕국은 물론 그레이트브리튼 왕국(1707–1801),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1801–1922),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현재의 영국)의 수도가 되었다.

영국(英國)’의 ‘英’은 ‘England’의 ‘Eng-’의 음역이므로, 이 시기에서 ‘영국’이라고 하면 대개 잉글랜드(또는 잉글랜드 왕국)를 가리킨다.

잉글랜드 왕국의 역사[]

잉글랜드의 유목민족이었던 색슨족871년앨프레드 대왕을 시작으로 잉글랜드 왕국이 시작되었다. 앨프레드 대왕 때부터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899년 대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른 뒤 잉글랜드의 군주는 9명이 더 올랐었다가 마지막 왕 용맹왕 에드먼드 2세 때에 덴마크의 왕들과 잉글랜드의 정통왕권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고 덴마크 왕들이 잉글랜드의 왕을 겸했다.

1042년에 색슨족이 왕권을 복원했고 참회왕 에드워드 3세를 포함해 3명의 왕이 오른 후 노르만 정복으로 색슨족이나 다른 국가가 아닌 왕조왕가라는 말을 썼으며 윌리엄 1세 이후 3명의 왕이 오른 후 노르만 왕조마틸다조프루아 플랜태저넷 사이의 혼인으로 마틸다를 포함해 플랜태저넷 왕가로 바뀌었고 마틸다를 포함 3명의 왕의 즉위 후 아일랜드의 영주 왕이 잉글랜드의 왕위를 계승하고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군주를 겸했다.

존 왕을 포함해 6인의 왕이 오르고 랭커스터 왕가가 일어났는데 이는 헨리 4세의 아버지의 작위 랭커스터 공작을 따와 랭커스터 왕가라 이름 붙였고 헨리 6세까지 존속하다 요크 가와 장미 전쟁이 일어났고 요크가의 승리로 요크 왕가가 일어났다. 하지만 요크 왕가 역시 많은 왕을 배출하지 못하고 3명의 왕만 배출했으며 에드워드 5세를 제외하고는 모두 적통성이 없거나 형제이다.

그 후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튜더가 다시 요크 가로부터 왕권을 찾았고 에드워드 3세의 현손 신분으로 왕위에 오르며 헨리 8세의 즉위와 어린 헨리 8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6세를 마지막으로 튜더왕가는 더이상 남자왕을 배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제인이라는 헨리 7세의 증손녀가 성공회의 노섬벌랜드 공작에 의해 추대되는 등의 사건으로 블러드 메리라 불리는 메리 1세의 종교탄압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으며,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결혼을 하지 않고 죽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가의 제임스 1세가 왕위에 오르는 등의 일이 일어났고 공화정이 일어나 올리버 크롬웰과 가문이 호국경을 자처하고 잉글랜드를 통치했고 스튜어트 왕가의 복위 후에 찰스 2세를 시작으로 총 8인을 왕위에 올렸다.

찰스 2세는 1675년에 상무부(Lords of Trade)라 불리는 새 기구를 만들어 제국적인 개혁안을 제시하도록 했다. 상무부의 권유에 따라 1679년에는 매사추세츠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매사추세츠로부터 뉴햄프셔에 관한 권한을 빼앗고, 뉴햄프셔를 왕령 식민지로 독립시켜 자신이 직접 총독을 임명했다. [1] :117

그 이후 지금까지 연합되었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가 하나의 국가로 통합된 이후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합쳐지고 잉글랜드 왕국의 통치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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